모두가 함께, 긍정의 힘에 관하여

모두가 함께, 모두가 잘-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 참으로 행복하다- 하는 분들은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모두가 잘사는 세상에 관하여 이야기한다면 아직도 치기어린 사춘기의 마음을 버리지 못한 이상주의자로 폄하되기 쉬운 작금의 상황에, 없음으로의 질주 혹은 무의미의 외침으로 기억될지도 모를이야기들을 잠시 해봤으면 합니다.

 

조엘 오스틴이라는 목사가 지은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어느 오래된 친구가 추천해 주었습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고집불통 나신교 친구이지만 매우 감명깊었다고 적극 추천하기에 꾹 참고 읽어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1년 전입니다).

너무나 재미가 없었습니다. 유일무이한 일자의 존재를 끌어다가 엉뚱한 논리를 유지시키는 기분이 들어서 심기가 매우 불편했지만 책의 제목처럼 저에게 발전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머리에 밀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할 이야기가 근본은 같으나 각색되어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은 '긍정에 관하여'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뇌구조 속에서 일어난 연역에 합당치 않으면 불만을 토로하게 되고 그것은 짜증, 화, 폭력성으로 표출됩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화'라고 부른다면, 이 화는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상황들 속에서 우리가 내는 화는 참으로 다양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화'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상황의 발전적 변화를 향한 목소리

둘째로 개인 감정의 표출을 통한 카타르시스

 

이 중에 개인 감정의 카타르시스라는 부분을 '악'으로 규정하고 싶습니다. 내가 그러한 행위에서 즐거움을 얻기 위해 생기는 일들은 세계에 대한 부정입니다. 왜 부정이 될까요?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생각을 낳습니다. 감정의 불쾌가 전염된다는 것입니다. 순간의 쾌락을 위하여 폭력성이 옮겨가 불특정 다수에게 불쾌감을 유발합니다- 라는 간단한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봅시다.

 

여기서 '기투'라는 개념을 조금 끌어다 쓰겠습니다.

 

사람은 미리 예상을 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혜들을 자연스레 쇠사슬처럼 연결시켜 연역을 하는 것인데, 불쾌한 표현들을 보았을때 사람들의 '기투'는 자신이 불쾌함 표출의 목적이 되는 상황에까지 이릅니다. 이는 순간이라는 표현속에 이루어지며 전지전능한 인간이 아닌 이상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던져진 화의 목표물로 자신이 정해진다는 상상이 그곳이 있는 순간 너와 나의 관계는 부정으로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흔히 뒷담화 많고 사상이 부정적인 사람들의 인간관계가 좋지 못한 것을 쉬이 볼 수 있을 것인데, 이는 당연한 이치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투'를 하고 그 속에서 자신에게 유무형의 해악을 끼치는 타인을 발견한다면 누구나 거부하고 무의식적 배제를 지향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생각이 어떠한 형태로든 결과를 끌어당기는 이치입니다(저는 시크릿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개인 감정의 카타르시스라는 부분은 실제로 무에서 긍정적 유(불이익을 당한 상황의 변화는 없는 개인 감정의 작은 해소)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부정적 유(상황의 변화도 없으며 심지어 나와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마저 악화시키는 극단적 처방)를 탄생시키는 극약입니다(파르마콘도 아주 지독한 파르마콘입니다).

 

나와 너의 관계는 놀라운 일입니다.

필자는 예전에 누군가에게 '밥을 산다'라는 행위를 고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통장의 잔고는 동양적 무(LIM n→0)로 다가갔고 공사판에서 아스팔트 깔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극단적 처방을 낳기 일수였는데, 사람의 마음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떠한 것인가 알아가는 동안 생각을 많이 바꾸게 되었습니다. 밥을 사는 돈에 포함되어있는 관계의 가치는 무궁무진합니다. 형이상학적 세계는 우리가 '거기 있다'라고 이야기할때 이미 그곳에서 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로 크고 방대한 감히 형언하기 힘든 관념의 체계가 우리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없다'라고 여기고 싶다면 그래도 좋습니다만, 형이상학적 위안 모두를 포기할 생각이라면, 만약에라도 그렇다면, 쇼펜하우어 어르신과 만나보길 바랍니다.

 

상황 발전을 위한 극약 처방으로 '화'를 사용하시는 거라면 긍정의 힘으로 조금 더 발전적인, 모두가 잘살고 나는 더 잘살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긍정적인 생각들로 세상에 대한 사랑을 풍요롭게 하였을 적의 '나'는 그 이전의 나와 매우 다르리라 감히 짐작해봅니다. 사랑하는 마음도 또한 '기투'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두가 잘 사는 방법이 이런 미미한 것들에 불과하지만, 이 놀라운 세상에게 작지만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냈다는 만족감에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by 자적 | 2009/03/22 19:14 | 생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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